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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l i v e

익명






 

 ncls ej가 처음 만난 건 10대의 끝자락 여름이었다

 

 무덥고 습했던 그날을 돌이키면 ej는 아직도 웃음이 비껴 나왔다. 제 첫 입소일이었다. 정부 부처의 소개로 들어가게 된 이상능력자 훈련소는 수도와 멀리 떨어진 지방에 위치해 있었다. 가는 길 내내 스산했던 그곳은 들어가는 데에만 해도 높디 높은 철벽을 몇 겹씩이나 통과해야 했다. 훈련소는 폐쇄된 격납고를 개조하여 넓은 공터와 지하실을 갖추고 있었고, 그 옆엔 숙소로 보이는 맨션이 붙어 있었다. 다 허물어져 가는 건물 안엔 그 흔한 냉방 장치 하나 붙어 있질 않아 바깥 온도와 다를 게 없었다. 좁은 방은 가져온 짐을 내려 놓기만 해도 꽉 찰 정도였고, 양 벽에 겨우 작은 침대 2개가 붙어있었다. 그 침대 중 하나에 ncls가 앉아있었다

 

 폭염의 열기로 가득 찬 방 안에서 어색하게 인사할 때까지만 해도 둘은 알지 못했다. 이 좁은 공간에서 주고받는 대화와 온기가 생의 유일한 위안이 되리란 것을.

 

 

 

 ncls는 화염을 다루는 자였고, ej는 지형을 바꿀 수 있는 자였다

 

 ncls는 평생 제가 가진 불씨를 감추느라 주먹 한 번을 휘두르지 못하고 살아왔다. 밖을 나갈 때마다 늘 검은 색 장갑을 꼈고, 조절하지 못한 화염에 누가 다치기라도 할까 장갑의 손바닥 부분이 타면 새 것으로 갈아 끼곤 했다. 정부 관계자와 처음 얘길 나눴을 때야 ncls는 처음으로 집밖에서 장갑을 벗어보았다. 그들은 ncls의 손끝에서 나오는 불꽃을 보며 조절할 수 있는 방법을 익히게 해준다고 했다입소하기만 하면 다시는 장갑을 끼지 않아도 된다는 말에 가족 모두가 기뻐하던 순간을 ncls는 잊을 수 없었다

 

 나면서부터 제게 능력이 있던 걸 알았던 ncls와 달리 ej는 사춘기가 지나면서 제게 이상능력이 있단 걸 알게 되었다. 그 첫날의 기억이 얼마나 선명한지, 사방이 빙빙 돌고 토기가 올라오던 느낌이 아직도 생생했다. 제 눈짓에 맞춰 이리저리 휘어지던 집 앞 공터와, 그 믿을 수 없는 울렁임과 사람들의 비명 소리. ej가 가진 능력은 다른 원소 계열 능력자와 규모가 자체가 달랐다. ej는 가파른 언덕을 평평하게 만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반대로 꺼지게 할 수도 있었고, 땅 위의 모래와 흙, 심지어 암석까지 멋대로 다룰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을 가지고서도 첫 폭주 때 사상자를 내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였다. 센티넬이란 개념조차 없던 시절 ej의 폭주는 '도심 속 싱크홀 다수 발생'이라는 이름 하에 신문 기사로 널리 퍼졌었다. 평범하다 믿었던 삶에 쥐여진 괴능력에 ej의 일상은 천천히 균열나기 시작했다. 이상능력자 딱지가 붙여진 후 받는 온갖 차별에 숨이 조여왔었다정부가 찾아온 건 그 즘이었다. 전무후무한 일들에 혼란을 겪던 일가족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말에 아직 10대인 아들의 입소를 지켜봐야만 했다

 

 훈련은 입소 다음날 곧바로 시작되었다. 매일 아침 훈련장과 연구실로 불려나간 두 사람은 녹초가 된 몸으로 숙소로 돌아왔다. 감옥 같이 좁은 방에서 기절하듯 눈을 감았다 깨어나면 다시 훈련장으로 걸어가야 하는 삶이 반복되었다. 하지만 육체적 고됨이 전부였다면 각오한 만큼 버틸 수 있었다.

 

'아드님의 능력으로 세상을 지킬 수 있어요.'

 

그때 둘은,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서는 또 다른 무언가를 파괴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몇 달 동안 두 사람은 제가 가진 능력으로 어떻게 같은 인간의 숨을 꺼트릴 수 있는지, 어떻게 하면 망설이지 않고 그럴 수 있는지 따위를 익혀 갔다. 그것만이 다른 이들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이라고 했다그 역겨운 과정을 마치고 나면 격납고 지하실에 갇혀 폭주 직전까지 몰아붙여졌다. 신경의 과로화를 견디지 못하여 코피를 쏟고 비명을 질러도 도와줄 이는 없었다. 사방에서 분사해대는 신경안정제에 정신을 잃고 다시 눈을 뜨면 똑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그 과정에서 점점 제 능력을 조절할 수 있도록 변해갔지만 그 모습은 사람이 아닌 병기와 닮아 있었다.

 

 

 

 계절이 지나 해가 바뀌고도 같은 날은 거듭됐다. ncls는 이제 제 화염이 다른 이에게 스치면 어떻게 되는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 제가 만들어낸 불길에 휩싸인 자는 살가죽이 타는 끔찍한 냄새와 그보다 더 끔찍한 절규와 함께 서서히 죽어 간다는 것도 알게 됐다. ej는 제가 얼마나 날 선 암석을 벼릴 수 있는지, 얼마나 빨리 사람의 급소에 그것을 꽂아 넣을 수 있는지 알게 됐다그게 저희 능력의 쓸모였었다.

 

"이런 걸 원한 게 아니었어."

 

 그렇게 제 스스로에게 구토를 하며 숙소로 돌아오면, 기댈 수 있는 거라곤 같은 처지인 서로가 다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아무것도 묻지 않고 곁을 내줬다. 가끔은 모든 게 무서워져 울음이 나도 그 체온에 버틸 수 있었다. 말없이 몸을 붙이고 있으면 상대방의 심장 고동이 들려왔다. 그때마다 어린 날 ej ncls는 저 자신들이 괴능력을 쓰는 금수가 아니라 그저 평범히 살아있는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었다.

 

 

 

 두 사람이 훈련생으로 지낸 지 2년이 지날 때쯤, 정부는 얼마간의 유예 기간 끝에 세상 밖으로 그들의 존재를 드러냈다. 감옥 같았던 낡은 숙소에서 벗어나 번쩍이는 센터로 옮겨진 그들은 센티넬이란 이름이 붙여져 특수부대로 출범했다. 사이코라 취급받던 이상능력자 집단이 군부대가 되었단 것에서 그들의 존재는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센티넬 부대는 곧장 출격하여 몇 달간 지지부진하던 북동쪽 자원 전쟁에서의 전세(戰勢)도 역전시킬 수 있었다. 실전에 투입된 그들은 몸에 이식된 것처럼 훈련의 효과를 보여냈다. 인간의 형상을 한 자의 목을 노리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과'가 돼 버린 지 오래였다

 

 

 첫 전투에서 승리를 하고 온 날, 땅 위에 서 있는 적군이 한 명도 없는 걸 확인한 날, 쓰러진 적군을 확인 사살하고서 맥박까지 재본 뒤에야 본부에 무전을 쳤던 그날. 둘은 새 숙소에 들어와 처음으로 입을 맞추었다. 그것이 승리로 인한 도파민이나 아드레날린 때문이 아니었단 것을, 그리고 아주 오랫동안 참아온 무엇이란 것을 둘 다 알고 있었다

 

"jj만 있으면 될 거 같아."

 

 그러면 버틸 수 있을 거 같아

 

 ej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웃었지만 그게 ncls에겐 진심인 걸 알았다

 

 그날 밤 모두가 센터 연회장에 승리를 축하하고 있을 때 두 사람은 땀에 젖은 서로의 맨 몸을 끌어안고 있었다.

 

 

 

 센티넬 부대는 연이어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그것이 전쟁을 종식시키며 평화를 가져오지는 못했다. 전쟁은 또 다른 전쟁을 낳았다. 끝없이 이어지는 전투에 둘의 출전 또한 잦아졌다

 

 그래서 그때 두 사람의 목표는 그저 '살아'남는 것이었다. 어떤 전투에서든 죽지 않고 살아남기. 버텨온 과거가 억울해서라도 죽지 않기. 전투 전 새기는 그 각오엔 서로의 자국이 묻어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ncls ej는 뼈저리게 알게 됐다. 자신들은 살아남고 싶다고 발버둥치지 않아도, 타인의 손길에 의해 명이 연장되는 특수부대의 일원이란 것을

 

 일반 군사와 달리 센티넬들은 가이딩 효과와 함께 쉼없이 출전이 가능했다. 살이 파이는 자상 정도야 하루면 회복이 가능했고, 뼈가 부러지거나 크게 화상을 입어도 자욱은 남을지언정 일주일이면 다시 전장으로 나갈 수 있는 몸으로 돌아갔다. 뇌나 심장이 터져버리지 않는 한 그들은 언제든 타인의 의지로 소생될 수 있었다.

 

 하지만 치사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고서 다시 전장으로 돌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다시 숨이 돌아왔다 해도, 죽어갈 때의 그 느낌이 생경했다. 이미 죽었어야 했던 몸이 몇 번이고 다시 살려지면, 육체 말고 다른 것이 파괴되었다. 살아도 산 것 같지 않은 몸으로 변해갔다. 가이딩으로 소생된 몸의 결과가 그러했다.

 

 그럴수록 두 사람은 서로를 찾아갔다. ncls는 가이딩 후 회복이 덜 된 몸을 끌고서라도 ej의 침대에서 함께 자곤 했다. ej의 심장소리를 들어야만 진짜로 회복된 기분이 든다며 뻔뻔스럽게 1인용 침대 안을 파고 들었다.

 ej 또한 가이딩 후 방으로 돌아와 늘 으스러지듯 ncls를 껴안았다. 그러면 저쪽에서 경쟁이라도 하듯 더 꽉 껴안아오곤 했다. 상대방 몸에 남은 수술실 소독 냄새와 타인의 체취에도 개의치 않고 서로를 품에 가뒀다. 체취를 느끼고, 체온을 느끼고, 서로의 심장 박동을 들었다

 

 

그때마다 둘은 계속되는 전투와 소생으로 인해 제 속에서 부서졌던 한 부분이 다시 채워지는 기분을 느꼈다. 마치 낡고 좁은 방에서 마지막 10대를 보내던 그때처럼

 

 

 

 

 

 

두 사람 모두 그런 순간이 영원할 거라 생각하진 않았다

 

 

"ncls씨는 북쪽 진영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나 예상했던 것보다 모든 게 이르게 찾아왔다

 

"ncls는 현재 저희 팀의 주력입니다."

 

 그래서 ej는 처음으로 큰 소리를 내며 항의했었다

 

"윗선에서 이미 결정된 사항이에요. 북쪽엔 얼음 지형이 많아 ncls 같은 분이 유리하여 더 많은 인원이 필요합니다. 그곳에 있는 바람 계열 센티넬들과 상성도 잘 맞고요. 이곳에서 아깝게 썩힐 필요가 더는 없는 거죠."

 

"ncls와 저희 팀은 지금도 잘 수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

 

"두 분은 같은 팀원일 뿐이에요. 다만 오래 함께했을 뿐이지요. 그렇다고 관여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다만 오래 함께했을 뿐이지요. ej는 그 말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타인에게는 그렇게밖에 정의할 수 없는 저희의 관계를 돌이켜봤다. 다만 오래 함께한 사이. 그 이상으로 더 붙일 수 있는 이름표가 둘에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 후로 ej ncls와 함께 북쪽 센터로 발령나기 위해 갖은 애를 썼다. 십수 번 제 의사를 내비쳤지만 모두 반려당했다. 흙과 암석 대신 얼음으로 가득한 지형에서 ej는 짐만 된다는 것이었다. 그때 ej가 느꼈던 감정은 분함이었다. 함께 시작했지만 계속 함께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았다.

 

"jj 없으면 이제 어떻게 하지?"

 

 jj한테 안겨야 살 것 같았는데

 

 마지막 밤 날 ej의 침대에 겹쳐 누워 ncls가 말했다. 부러 장난스럽게 뱉는 말투에 ej는 눈을 맞출 자신이 없었다

 

"연락하면 되지. 편지도 쓰고."

 

가끔 여기 들러

 

내가 가기도 할게.

 

 ej는 울음을 삼키며 말했다. 그 모든 문장이 헛되다는 것을 앎에도 ncls는 고개를 위아래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노력할게. 그리고 빈틈없이 ej의 품에 안겼다.  

 

"다시 볼 때까지,"

 

 몸 챙겨야 해, jj.

 

 물기 어린 마지막 말에 ej는 깊은 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가지 않았으면 했다. 이 품에 들어찬 몸을 영원히 제 안에 새기고 싶었다. 이대로 ncls와 꼭 맞는 퍼즐 조각이 되어 어딜 가든 함께 갈 수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ncls가 떠나고도 ej의 삶은 변함없었다. 규모를 가리지 않고 전투에 나갔고, 연구원의 지시에 따라 가이딩도 성실히 받았다. 달라진 게 있다면 매일 전사자 명단을 챙겨본단 것이었다. 혹시라도 익숙한 이름이 있을까 ej는 몇 번이고 심호흡을 한 뒤에야 사람들의 이름을 훑을 수 있었다. 제가 아는 이름이 없는 걸 확인하면 가슴에 얹혀진 돌이 그나마 걷히는 기분이었다

 그걸 매일 반복하며 ej는 깨달았다. 자신은 이미 부서져 죽은 사람인지 오래였다고. 다만 누군가의 온기에 겨우 살아있다 느꼈던 거라고.

 

 

 그래서 어느 날, ej는 참지 못하고 결국 편지를 썼다. 부칠 수 없는 것을 앎에도 제멋대로 수신자를 정해 글을 써내려 갔다. 제가 사람이 아닌 괴물 같다고 느낄 때마다, 가이딩이 끝나고 돌아갈 품이 없는 걸 깨달을 때마다, 저를 애칭으로 부르며 먼저 안겨올 이가 없단 걸 깨달을 때마다, 편지의 장수는 점점 늘어났다.

 

'다만 오래 함께했을 뿐이지요.'

 

  그 말을 ncls에게 꺼내면 무슨 답을 들을지도 궁금했다. 열아홉 이후로 함께가 아닌 적이 없었는데 이렇게 오랜 시간 떨어져 있다고. 그럼 이젠 무슨 사이냐고. 오래 함께했다가 이젠 오래 떨어진, 그런 시시한 사이인 거냐고. 연락할 방도도 없이 이러다 전장에서 죽으면 그걸로 그만인 사이인 거냐고. 왜 우린 친구이자 동료이자 서로의 목격자였는데, 어떠한 이름표도 붙이지 못하는 사이인 거냐고. 그렇게 묻고 또 묻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며 ej는 숙련된 센티넬이 되어갔다. 전투 경험이 는 만큼 부상과 가이딩 횟수도 늘어갔다. 그동안 ej 5번 더 소생하였다. 5번이나 죽어야 할 순간을 거스르고 눈을 떴다. 전투 상황이 아님에도 순간순간 죽음에 이를 때의 고통이 눈앞에 들이밀어졌다. ej는 그런 잔상을 견디기 위해 담배도, 술도, 약도 할 줄 몰랐다. 다른 이들이 샌님 같다고 놀려 대도 ej는 가만히 웃고만 있었다. 대신 ej는 머리 한 켠에 자리 잡고 있는 어떤 이와의 기억을 딱지가 일 정도로 들춰보았다. 혹여나 다른 기억들에 밀려 조금이라도 사라질까, 오직 그것만을 두려워했다

 

 

 얼마 뒤 최남단 지역에서 벌어진 전투 한가운데서 ej는 블랙아웃을 겪었다. 적에게서 후퇴하던 도중 날아온 포탄이 그대로 ej의 몸 옆에 꽂혔다. 상하체 모두가 찢어지는 고통이 느껴졌고 신경이 하나하나 타들어감을 느꼈다. 그 순간 ej의 의식은 사라졌다. 곧바로 아군에게 발견되어 응급처치는 받았지만 후속 가이딩과 수 차례 수술 뒤에도 회복력이 돌아오지 못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뜨게 되었을 때 ej는 지형을 바꾸는 능력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아무리 연습해도 돌아오지 않았다. 유리 조각처럼 깨진 몸을 몇 번이고 억지로 이어 붙인 대가였다. 그럼에도 ej는 숨이 붙어있음에 감사했다. 제게서 이상능력은 사라졌지만, 사진 속에 갇힌 모습으로 다시 만날 거라는 약속을 지키지 않아도 되었다.

 

 

 

 

 ej의 전역 절차는 자연스럽게 진행되었다. 전장에 나가지 못하게 된 것이 다행이면서도 불안했다. 늘 벗어나고 싶은 쳇바퀴였는데도 제 수신호를 기다리고 있을 팀원들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전투복을 입고 나가야할 것 같았다. 제가 지닌 몫이 여전히 남아있을 것 같았다.  

 

 

 

 ej의 전역날은 첫 입소날과 같이 스산했다. 수 년 만에 돌아간 고향은 어색하기만 했다. 사람들은 센티넬의 존재를 알고 있었으나 자신의 존재는 알지 못했다. ej는 그곳에서 제 남은 삶을 평범히 보내려 애썼다. 눈을 감으면 드문드문 폭격 소리와 제가 죽인 이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지만 어느 정도는 해낼 수 있었다. 그렇다고 믿고 있었다. 어느 날 밤 꿈에서 저를 jj라고 부르던 이를 마주치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ej는 결국 고민하던 것에 마침표를 찍기로 했다

 

 다음날 ej는 몇 년 전 썼던 편지 뭉텅이를 모두 챙겨 들었다. 수신처는 북쪽의 센티넬 센터였다. 수천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도착하기까지 몇 달이 걸릴 테고, 도착한다고 해도 전달되지 못할 종이들이었다. 그러나 ej는 그렇게라도 묻고 싶었다. 과거의 망령에 시달릴 때마다 ncls도 가끔 제 생각을 하는지. 제 품이 간절할 때가 있는지. 제 체온이 그리울 때가 있는지

 

 

 

 

 

 

 

 

 

 

 

그리고 꽤 오랜 시간이 지난 뒤였다.

 

"jj."

 

기억 속의 것보다 더 낮은 목소리였다.

 

"너는 내 편지 하나도 못 받았지."

 

 엄청 많이 썼었는데.

 

 ej는 믿기지 않아 몇 번이고 꿈이 아닌지 확인해야 했다

 

"난 매일 내 편지 온 거 없나 빼돌린다고 힘들었는데."

 

 어떻게 딱 한 번만 보내줄 수 있어, jj.

 

"그것도 몇 년 만에 한꺼번에 스무 통을 보내준 거야."

 

 ej는 몸을 일으키자마자 제 앞에 있는 이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저와 같은 체온이 느껴졌다. 날렵한 턱선도, 뾰족한 코 끝도, 오른쪽 팔에 느껴지는 흉터도. 모두 그였다.

 

"ncls."

"jj."

 

나 왔어

 

ncls는 제 얼굴을 만지는 ej의 손에 깍지를 꼈다. 그 사이로 두 사람의 눈물 방울이 떨어졌다.

 

"나한테 우린 무슨 사이냐고 물었지, jj." 

 

 그야 우리 둘 다 능력 다 돼서 퇴역한 군인들 사이지

 

 눈물을 흘려보내는 사이로 ej가 코로 웃음을 뱉었다

 

"근데 서로 좋아했던."

 

 적어도 나는 계속 좋아했던.

 

그 답변에 ej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나도,"

 

 나도 같아, ncls.

 

널 좋아하는 것 이상이었어.”

 

ej가 눈물을 닦고 ncls의 어깨를 천천히 끌어안았다.

 

그 품에서 제가 기억하는 화염의 탄 향은 나지 않았다. 그의 체취만이 더 강하게 느껴질 뿐이었다

 

그제야 ej는 둘 모두 이상능력자의 굴레에서 벗어났음을 깨달았다.

 

 

 

 

두 사람은 그 언젠가처럼 가만히 몸을 붙이고 상대방의 심장 소리를 들었다

 

 의주와 니콜라스는 이 소리만이 저를 살아있다고 느끼게 해줬던 것을, 여전히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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